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에 대하여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지금도 그림을 주문한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에 걸려 있습니다. 엘 그레코(본명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1541~1614)가 1586년부터 1588년까지 톨레도에서 그린 캔버스 유화로, 매너리즘으로 분류됩니다. 오르가스의 영주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를 성 스테파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덤에 안장했다는 전설을 그렸으며, 위쪽에는 천국이 열려 있습니다.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라고도 하며, 스페인어 제목은 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입니다.
- 무엇을 그렸나: 금빛 제의를 입은 성 스테파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성직자와 톨레도 귀족들 사이에서 갑옷 차림의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고, 천사가 그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데려갑니다.
- 제작 계기: 본당 신부 안드레스 누녜스 데 마드리드는 소송(1564~1569)에서 이겨, 영주가 성당에 남긴 해마다의 기부를 오르가스 마을이 다시 바치게 했습니다. 1583년 기적이 공식 인정되자 신부는 영주의 경당에 걸 그림을 주문했습니다.
- 계약: 1586년 3월 18일에 맺은 계약은 장례 장면, 두 성인의 강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그 위에 열린 영광의 하늘을 그려 그해 성탄절까지 완성하도록 정했습니다.
- 두 세계: 지상 장면은 검은색과 회색으로 그려지고 횃불 여섯 개만이 비추는 반면, 천상은 그리스도에게서 퍼지는 빛과 색채로 가득합니다. 성당은 이를 아래의 죽음과 위의 영원한 생명으로 해석합니다.
- 재료와 크기: 캔버스에 유채, 480 × 360 cm. 1586년 3월 중순부터 1588년 1월 말까지 그렸습니다.
- 가격 분쟁: 두 화가가 1,200두카트로 평가하자 신부는 지나치다며 재평가를 요구했습니다. 재평가에서는 1,600두카트가 나왔지만, 결국 첫 평가액인 1,200두카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출처: 산토 토메 성당: 엘 그레코와 작품 · 산토 토메 성당: 성당과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 · 톨레도 시, 『Cuadernos de Archivo Secreto』 1호(2019): 1586년 계약과 1588년 소송 · Toledo Monumental: 산토 토메 성당(관람 안내) · Wikidata Q94802
이 그림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무엇을 그린 그림인가요?
엘 그레코의 이 그림은 톨레도의 은인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오르가스의 영주)에 얽힌 기적을 그렸습니다. 성 스테파노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늘에서 내려와 직접 그를 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래쪽 장례 장면은 검은색과 회색으로 그려졌고, 위쪽에서는 천사가 데려온 영혼을 그리스도가 맞이하며 하늘이 빛과 색채 속에 열립니다. 산토 토메 성당에 따르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그리스도는 심판자로,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성 요한은 영혼을 위해 전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출처: 산토 토메 성당: 엘 그레코와 작품 · 산토 토메 성당: 성당과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 · Wikidata Q94802 (묘사 대상)
엘 그레코의 그림은 톨레도 어디에 있나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콘데 광장 4번지)에 있으며, 이 성당이 그림을 주문한 본당입니다.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가 묻힌 경당을 위해 그려졌고, 경당은 1586년 그림을 걸기 위해 개조되었습니다. 1975년 복원 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으며, 방문객 전용 입구가 있는 공간에서 유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는 아래 절반을 옮겨 그린 복제본(P000830)만 있습니다.
출처: 산토 토메 성당: 성당과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 · 산토 토메 성당: 엘 그레코와 작품 · Toledo Monumental: 산토 토메 성당(관람 안내) · Wikidata Q27699879 (프라도 미술관 복제본)
그림 속 인물들은 누구인가요?
아래쪽에서는 젊은 부제 성 스테파노와 주교관을 쓴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갑옷 차림의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를 무덤에 안장합니다. 주위의 성직자와 귀족들은 성당에 따르면 화가와 같은 시대 사람들의 초상입니다. 오른쪽 끝의 흰 중백의를 입은 사제는 작품을 주문한 본당 신부 안드레스 누녜스 데 마드리드입니다. 왼쪽에서 시신을 가리키는 소년은 엘 그레코의 아들 호르헤 마누엘로, 주머니의 손수건에 화가의 서명과 소년이 태어난 해인 1578년이 적혀 있습니다. 위쪽에서는 그리스도가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성 요한 사이에 앉아 있습니다.
출처: 산토 토메 성당: 엘 그레코와 작품 · Web Gallery of Art: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 Wikidata Q94802 (묘사 대상) · Wikidata Q3109427 (호르헤 마누엘, 1578년 출생)
오르가스의 영주는 누구이며, 왜 ‘백작’이라고 부르나요?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는 오르가스 마을의 영주(세뇨르)였고 백작은 아니었습니다. 백작 작위는 나중에 그의 가문이 받았으며, 그래서 산토 토메 성당은 그를 ‘오르가스의 영주’라고 부릅니다. 그는 카스티야의 수석 공증인으로, 산토 토메 성당의 재건 비용을 보탰고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을 위해 산 에스테반 성당을 자비로 지었습니다. 성당과 Wikidata는 그가 1323년에 죽었다고 하며(옛 문헌 중에는 1312년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성당에 따르면 기적은 그의 유해가 산토 토메 성당으로 옮겨진 1327년에 일어났습니다.
출처: 산토 토메 성당: 성당과 돈 곤살로 루이스 데 톨레도 · Web Gallery of Art: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 Wikidata Q3817176 (Gonzalo Ruiz de Toledo)
이 유화의 크기와 재료는 어떻게 되나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그림으로, 크기는 세로 480 cm, 가로 360 cm입니다. 1586년 3월 18일 계약은 경당 벽의 아치부터 묘비명까지를 캔버스로 채우고, 그 아래에 무덤을 프레스코로 그리도록 했습니다. 산토 토메 본당 신자였던 엘 그레코는 1586년 3월 중순부터 1588년 1월 말까지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출처: Wikidata Q94802 · Toledo Monumental: 산토 토메 성당(관람 안내) · 톨레도 시, 『Cuadernos de Archivo Secreto』 1호(2019): 1586년 계약과 1588년 소송
엘 그레코의 그림은 저작권이 만료되었나요?
네. 엘 그레코는 1614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모든 나라에서 저작권이 소멸했습니다. 퍼블릭 도메인 그림을 충실하게 찍은 사진에는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새로운 저작권이 생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이미지를 내려받아 개인 및 상업 프로젝트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퍼블릭 도메인 이미지에서 확인하세요.
















